2004년 08월 29일
무임승차자
길바닥에 나 앉게 생겨서 집을 물색하러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가끔씩 너무 아끼려다 보면 더 크게 잃을 수가 있기에
흘러가는대로, 인연되는대로 그렇게 따르자, 마음먹었다.
그래, 매듭을 풀기는 이제 글렀다, 알렉산더처럼 자르기로 하였다.
두 정거장쯤 갔을까,
지하철에 일군의 제복들이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
"표 검사 하겠습니다"
독일은 우리처럼 표를 사서 체크를 하도록 되어 있지 않고
가끔 불시검문을 통해 무임승차자를 적발해 낸다.
걸리면 벌금 50유로. 조사할 때 보면 걸리는 사람이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정기승차권을 매달 초에 사기 때문에 탈 때마다 조마조마할 만한 일을
굳이 벌이려 하지는 않는다.
자기 취임식에 맞춰서 서울교통시스템을 갈아엎으려 한 맹박이를
난들 좋아하겠는가 마는, 그렇다고 무임승차 비법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시민들을
가지고 뭔들 믿고 해보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이까지 생각한 순간, 저 쪽에서 남루한 차림을 한 아시아인들이 검표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 우루루 탔을 때 이미 중국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요즘 중국 사람들 만만치 않게 차려입고 다닌다. 싸움구경을 해볼까 하고 갔더니, 사연인즉 이 가족+친척들로 보이는 사람 여섯이 다섯명용 티켓 한장만을 갖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한 명은 무임승차. 50유로를 내야 한다고 설명하는 독어만 할 줄 아는 검표원 앞에 외국어를 거의 못하는 이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끼어들었다. (여러나라 말이 난무하는 과정 중간 생략.) 사정사정 검표원에게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라 서툴러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를 못한듯 하다고 대신 변명을 해주었고, 벌금을 내야 한다고 고압적으로 나오던 검표원은 피식 웃으며 내려서 한장 더 사라고 양해를 해 주었다. 정말 몰랐을 거라기 보다는 이 나이브한 사람들, 별 일 있겠냐 생각했던 것같지만, 웬지 끝까지 도와주고 싶었다.
연신 내게 고맙다던 그들은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고 저쪽으로 걸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아차, 한마디를 잊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이, 나 코리언이야. 늘 미안해, 베트남."
# by | 2004/08/29 09:15 | 함부르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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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터님 좋은 일 하셨네요. ^^
아. 이런식으로 자꾸 'alster=멋진남자'라는 암시 주지 말아요.
잘못하면 여러사람. 오래도록 세뇌의 후유증에 시달리겠어요. ㅡㅡ^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