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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28일

교육부 장관 논문 관전평

개인적으로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의 사적인 행태 자체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선진국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적인 영역에서 뭘 하든 자기 할 일을 잘 해 주면 그만이다. 정치인들을 연예인 대하듯이 하면 정책적인 쟁점이 도출되기 어렵다는 점도 있겠지만, 정말 문제가 될 만한 행태와 그렇지 않은 행태의 기준을 세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전에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파문의 경우 나는 그가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치인 윤리에 대해서 상식적인 가이드라인이 그어져야 그것을 넘는 놈들을 엄단할 수 있는데,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잡을수록 그 기준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되어서 정작 나쁜놈들이 버티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그와 별도로 우리 골프 문화에 대해서는 글 하나를 권하고 싶다. 아주 효율적으로 골프가 문제되는 지점을 짚고 있다.강준만, 골프 공화국의 거지와 접대부)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과 논문 중복 게재 문제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이 경우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국민들이 교육부총리라는 자리에 대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그런 도덕적 상징성을 갖는 관료 자리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쁠 것같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원칙적으로 교육부 장관은 일을 잘 해야 하는 정치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도덕성과 정치력은 기이하게도 겸비하기 쉽지 않은 덕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가 정치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볼 때 도덕성이 얼마나 기준을 넘을 정도로 훼손되었는지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기사들을 보면서 내가 아웃시켜야 하는가를 판단해 봄 직하다고 생각한 기준은 김부총리가 제출한 두 편의 논문이 BK(Brain Korea)21 사업의 실적 평가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가이다. 그저 우리 팀이 그 기간 내에 이런이런 일을 했어요 하면서 이력서 제출하듯이 연구업적을 내는 데 두 편 제목을 같이 끼워 넣은 것이라면 그냥 덮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 두 편의 논문이 실적 심사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면 (그걸 심사에서 왜 체크하지 못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물러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돈을 받았는데 그것을 부풀려서 허위 보고를 하고 돈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일전 황우석 사태에서 박기영 보좌관이 비슷한 짓들을 했는데 그냥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언론에서 이런 기준을 갖고 사실관계를 자세히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표절과 논문중복 게재 관행에 대해 좀더 말하면

교육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는 일단 그 정도로 해두고, 학계에서 자리잡은 논문중복 게재 등에 관한 일부 관행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계기는 되리라고 본다. (교수신문에서도 관련 기사를 실은 듯한데 유료회원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외국 독자는 어쩌라고)

사실 이 모든 문제가 그 옛날 모래시계의 명대사, "공부하고 싸움하고 둘 중에 하나만 해"라던 교훈을 따르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수도 있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교수도 있고, 다 이해는 할 수 있는데 그 모든 영광을 다 누리려고 하니 자꾸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김부총리만 해도 고작 16페이지짜리 행정학 논문을 두 번 실은 건데, 그 얇은 논문을 두 번이나 내야 할 만큼 사정이 절박했는지 참 안타깝기도 하고, 그리 시간이 없으면 뭐하러 BK21 같은 곳에 연구비 신청을 했냐 이 말이다.

물론 자기가 쓴 논문을 두 군데에서 게재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관행이라서 비난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경우들도 가끔 있다. 어떤 이익을 직접 취할 의도나 가능성이 없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대 사회과학논총이라는게 좋게 보자면야 학제간 소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대학안의 전자공학과하고 생명공학과가 같이 논문을 내는 잡지가 최고 수준 학술지일 가능성은 없을 것이므로, 2001년의 중복게재에 대해서는 김부총리의 변명이 이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두번을 싣게 된 것이 가령 자기 학교의 잡지에 너무 글이 없어서 땜빵을 해줬다거나, 정말 유명한 학술지에 다시 논문을 낼 기회가 생겼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다면 (왜 각주에 그 사실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는지는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돈 문제가 걸려 있지 않을 경우 구차하긴 하지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을 받은 논문을 몇 년 있다가 다시 어느 잡지에 내고 그것을 연구업적으로 올렸다는 지점인데, 이 부분은 양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행위가 아닌가 싶다.

김부총리의 경우 논문이 거의 흡사하다니까 해당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자기 논문의 부분을 가져다 쓰는 표절 문제도 있다. 이 때 상당히 애매한 것이 연구자들이 널뛰듯이 늘 새로운 걸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 자기가 공부한 데서 조금 더 새로운 걸 보면 옛날 것을 왕창 갖다 붙이고 새로운 걸 조금 더 붙여서 내는 경우가 있다. 엄격히 보면 자기 말을 자기가 다시 한 것이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게, 논문 두 편 만큼의 업적이 아닌데 이걸 두번으로 카운팅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표절의 문제도 점차 엄격히 관리되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밖에 김부총리가 제자 박사논문을 표절했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치사한 것이지만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가 논문을 썼으면 자기가 아무리 논문 작성 과정에 개입했어도 최소한 공저 정도의 형태로 해서 논문을 냈어야 하는데 그 데이터를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쓴 건 제자의 장래를 장려해 주는 자세는 아니라서 치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만 선생이 박사논문의 주제를 주고 직접 가르쳐 가면서 논문을 쓰게 했다면 선생이 그 관련 논문을 낸다고 해서 시비걸기도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아이디어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둘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학자의 길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반대로 김부총리가 거의 써주다시피 해서 박사를 줬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 해도 칭찬받을 짓은 아닌게 분명하다. 정말 학자적 양심으로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제자가 이미 사망했다니 알 길은 묘연할 뿐.

이래저래 선생이 되어도 연구업적 채우기도 힘들겠구나 싶기도 하고, 인사가 어렵구나 하는 짐작만 해볼 뿐이다.

# by alster | 2006/07/28 01:32 | 나르치스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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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7/28 14: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하트의여왕 at 2006/07/28 14:51
뭐.....교수가 제자 논문 갖다가 맘대로 쓰는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보니...그냥 씁쓸할 따름이에요...
Commented by 이카루스 at 2006/07/28 16:11
매번 여론화되는 씁쓸한 관행입니다.
표절에 대해서 관대한 우리나라의 연구풍토가 빨리 바뀌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구조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겠지만...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29 01:58
비공개님: 그렇죠, 이 사이트 어딘가에 소개한 글 중에 암묵지에 관한 칼럼이 있습니다. 논문의 양과 같은 양적 평가 보다 '암묵지'가 영향력을 발휘하면 양적인 기준을 맹신하는 날림 공사들은 없어질 것같은데, 그럼 또 평가의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죠. 결국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하트의 여왕님: 제자가 대신 안 쓰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 제가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학계 풍토가 그 정도로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이번 이런 파문 같은 것들이 계속 나오면서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파문도 경종을 울린, 긍정적인 의미가 있겠군요.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29 02:32
이카루스님: 집단작업을 하다보면 애매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 문화풍토에서 학자적 양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자기표절 문제는 그것이 표절일 수 있다고 생각 못하는 사람도 아직은 많을 겁니다. 과도기죠.
다시 여론몰이가 시작되는 것같아 원래 김부총리가 한 일이 관행과 원칙을 종합해서 얼마나 비판받을 만한 것인가 하는 기준을 제시해 보고 싶어서 써봤는데 어떻게들 보셨는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은하 at 2006/07/29 14:15
김부총리와 별도로, 교수들이 생각보다 제자논문 표절하기, 논문 중복으로 내기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충격받았었어요...-_-;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29 15:54
선생님들이 또 착한 학생의 마음을 충격받게 했군요.^^ 저는 김부총리와 별도로 냄비처럼 흥분만 할 게 아니라 학계에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포스팅을 한 건데요, 중복 논문게재에 대해서는 아마 지금 꽤 많은 교수님이 찜찜하게 생각하시고 있을 겁니다.^^ 가령 조선일보에서는 공격을 한답시고 프로젝트 보고서 낸 것을 토대로 논문을 낸 것까지 씹어대고 있던데 이건 정말 광범한 학계의 관행이거든요. 사실 그런 보고서는 보통 출간이 안되고 내부 공개이기도 해서 일반에 알릴 필요도 있는 데다가, 연구자가 자기 성과물로 사용할 기회가 주어져야 내실이 생길 수 있는 점도 있거든요. 그 밖에 자기학교 연구소 학회지 같은 데는 왠만한 메이져 대학아니면 논문 채우기도 쉽지 않아서, 다른 데에다 내면서 거기도 같이 실어주고 그런단 말이죠. 후학 입장에서 왜 그러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건 이해가능한 범위에 있는거죠. 문제는...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29 16:03
결정적인 문제는 이렇게 중복 게재를 해서 연구비를 이중으로 타먹었다든가, 승진 심사에서 이중으로 카운트 되게 했다던가 (참 이건 뒤집어 말하면 얼마나 심사가 형식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했다면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법적인 문제까지도 생길 수 있는 행위를 한건데, 단순히 그럴 듯하게 보일려고 불려서 이것저것 이른바 행정상 편의로 처넣은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죠.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학진 지원을 받아 쓴 논문을 몇 년 후에 다시 게재한 다음 그걸 BK 업적으로 기재한 부분은 구제가 좀 어려운 행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단 몇 년 전에 낸 논문을 각주 하나 없이 다시 실은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그걸 나중에 업적으로 까지 냈다면...심사위 측에서는 사후 평가서가 없다고 했다는데 폐기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에요.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30 08:56
결국 물러나더라도 억울하다 소리할 형편은 못되겠다는게 제 결론이구요, 우리 사회 상층부 행태의 치부를 또한번 들여다보게 되는 것같습니다만, 제 균형감각으로는 입에 담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 식으로 몰아가는 언론행태와 반응에 대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기도 해요. 슬쩍슬쩍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조하는 기사를 쓰면서 몽둥이 찜질을 해놓고 나중에 가서 이미 권위를 잃었으니 업무를 수행할 형편이 못되겠다, 하는 식으로 쏠려버리는 건데...어느 교수는 '우리 안의 식민성'까지 지적하시면서 구름잡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후에 얼마나 학계가 기준을 갖고 정화노력을 할 지 한번 지켜볼 생각입니다. (혹시 제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적을 해주세요, 사실 이 포스팅에 대해 반박이 있겠다 하는 기대도 약간 있었는데...^^)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30 10:40
제가 제기했던 쟁점들이 이 기사에 모두 잘 나와 있군요. http://www.yonhapnews.co.kr/news/20060730/060400000020060730090241K8.html
이 기사에 언급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의 입장이 제 생각이었던 겁니다.^^ <김정인 교수는 "같은 학자의 입장에서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전한 진심어린 권고다. 정치권 등에서도 이번 논란에 동정 혹은 정쟁이 아닌 `원칙'의 잣대를 대길 바란다"면서 "김 부총리로 불거진 이번 논란을 단순히 용퇴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학계 내부의 자기반성 및 연구윤리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Commented at 2006/07/31 00: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6/08/03 07:24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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