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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26일
황우석 사태의 초기에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듯 보였던 인문사회학도들 중에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던 반면, 평소 사회문제에 무관심해 보였던 많은 이공계학도들이 평소의 과학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냉철한 비판을 가해 우리를 놀라게 한 바가 있다. 나 역시 이 일로 과학(학문)적 사고의 힘이 우리사회가 합리적으로 나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주춧돌인가를 절감하였고, 보다 상호간에 열린 배움의 장들이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이오공감에 뜬 모기불통신이라는 블로그에서 내가 반나절을 들여가며 많은 글들을 읽어보게 된 것도 그런 상호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글솜씨 있는 과학자의 글들을 만나서였다고 할 수 있겠다. 과학을 쉽게 배울 수 있다면 이 아니 좋겠는가. 게다가 정치적인 견해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내에 있어서 반갑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스팅들을 읽어 나가면서 느껴지는 빈정거림에 나는 점점 불편해져 버렸고, 잠시후 그 불편함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나의 감상이고, 혹여 그런 문제에 대해 앞으로 부딪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예방주사다. 행여 '관심법'의 비아냥을 들을까 두려워 언급해 두는데, 이 글의 비판적인 지적의 대상이 그 블로그 주인장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최근의 시민단체를 비판하는 어떤 흐름에 대한 것이며, 그 주인장은 이미 이하의 내용에 대해서도 인식을 가진 사람임을 알고 있음을 밝혀둔다. (링크나 트랙백은 좋으나 퍼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1. 욕먹는 시민운동단체? 환경운동단체의 문제있는 흐름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고, '일부' 소비자/환경운동단체의 정교하지 못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끔은 나도 NGO들이 난립하니 검사후 등록필증을 발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운동단체들의 전문성 부족을 그들의 무능함 탓만으로 돌리는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환경운동연합 등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만만하지 않은 실력을 쌓아가고 있지만) 취지는 동감한다면서도 시민단체 '욕'을 하시는 분들께는 충심으로 그런 운동단체에 직접 참여하셔서 고급두뇌를 좀 빌려주시면 어떨까 건의하고 싶다. 과학적 연구의 발전 방향이나 연구자의 분포도 돈의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보면, 기존의 과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대로된 반박을 위해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대안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반 환경적 이슈보다 화학제품 등에 관련된 문제에서 훨씬더 격렬한 어조의 전문가 반박들이 나오는 것도 좋게 말해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여서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해 그것이 자본의 이해에 직접 연결되는 것이어서가 아닌가. 시민단체에 대해 기업들이 반격의 포문을 연 것은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환경운동단체에서 제기하는 과학적 문제제기를 '정크사이언스' (쓰레기 과학)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환경론자들은 대중들을 겁먹게하고 과대포장한 내용으로 위협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지만, (특히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가 급성장하면서 이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고 있고, 모기불통신의 날카로운 비판들을 보면 이런 반격에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그런 반격에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허물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시민운동단체들이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엮어서 엄청난 손해배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전제에서 볼 때 기업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한 것이지 돈을 뜯어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자) 아직 우리나라는 도덕성 문제에 대한 비판이 어쩌다 터지는 스캔들 수준이거나 음해인 경우가 많지만 시민단체들도 이익을 보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이라는 '필살기'를 보수신문에서 슬슬 흘리고 있는 걸 보면 부디 시민단체들이 정신 바짝 차려주길 바랄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과학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사회 시스템에 대한 거버넌스 차원의 이해에서 볼 때 시민참여는 이미 현대사회에서 시민의 일반적 공익을 담보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아니할 말로 인권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그런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가 조금 나아지면 바로 그 욕을 하던 사람들이 직접 수혜자들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가. (아 물론 이해관계 있어서 욕하는 사람들은 봐준다. 밥그릇이 웬수지.) 그래서 나는 그런 욕을 들어가며 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 신념이 아니고선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운동가들이여 이해해 주시오,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2. 과학의 문제 우리가 과학적 태도와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현재 과학이 내놓고 있는 결론이 최종적인 것도 아니고 오류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면서 계측방법과 장치, 방법론의 발달에 따라 계속 수정되어야 할 미완성의 것이라는 점을 먼저 꼭 지적하고 싶다. 여기서 굳이 DDT의 드라마틱한 몰락을 언급할 필요나, 벤젠이나 염소를 둘러싼 공방을 상기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이다. 현대 과학이 이미 많은 일을 해결한 듯 보이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매우 협소하다. 이를테면 화학물질의 규제에 관한 법을 볼 때, 새로 개발된 화학물질은 오히려 심사를 받고 등록 후 시장에 나오지만, 1981년 이전에 이미 시장에 유통된, 그리고 실상 우리 삶을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는 화학물질 (구 화학물질이라고 부른다)은 그에 대한 어떠한 공적인 정보제공이나 규제없이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까스로 최근에야 서구에서는 이 구 화학물질에 대한 동물실험 등을 거친 정보제공을 의무화하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존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실제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과학적으로도' 검증이 되지 않은채 유통되는 화학물질들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기업측이 악의가 없다 해도 데이터 생성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물질들이 해로움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의혹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문제제기를 계속 해대야 겨우 과학기술자들이 동원되고 비용을 들여 조사에 나서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과학의 발전 방향이라는 것도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균형있게 발전되기가 힘들다는 점도 부기해두자. 고전의 반열에 오른 과학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따르면, 1960년에도 이미 전체 응용곤충학자 중 단지 2퍼센트 만이 생물학적 방제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나머지 98퍼센트는 화학살충제 관련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취직해서 연구할 수 있는 자리가 그런 비율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오늘날에 와서는 크게 달라졌을까? 환경단체들의 노력없이 과연 정부가 이들에게 규제의 손길을 뻗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시민단체의 의혹 제기나 비판,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자의 임무는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상 법에서 규제하는 오염물질에 대한 한계치라는 것도 (독성학 등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 그 정밀성 자체도 의문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평균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어린이 등 약자에게도 무해한 기준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고, 다양한 원인이 집합적으로 작용해서 부작용이 생길 경우, 즉 집적적 피해는 규제 기술적으로도 고려하기가 매우 어렵다. 환경소송에서는 언제나 인과관계 입증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뭔가 피해가 확실하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는 반응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것일 수밖에 없으며, 과학적 데이터를 맹신하기에 앞서 그 기준에 대한 끊임없는 개량에의 요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3. 시민단체의 겁주기? 과학 문제의 당파성에 대한 문제는 그 정도로 하면, 또 다른 대표적인 비난 중에 시민단체가 과학적 데이터없이 겁주기를 하고, 그 결과 피해보는 기업들이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가 무식한 소리하는 건 통렬히 반성하고, 많은 전문가의 도움 속에 개선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사실 겁주기라는 게 시민단체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종종 불확실성 하에 놓인 현대사회의 문제처리 매커니즘에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정말 위험한지도 모르지만, 위험하지 않은지도 모르는 상황에 우리는 매일 부딪히고 있으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따로 심각한 논쟁이 필요한 영역이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리스크에 대한 문제는 지금 가장 뜨거운 논쟁 현안 중의 하나다. 모기불 통신에서는 어느 법대교수의 '대중겁주기 환경운동'을 괜찮은 글이라고 칭찬하며 링크해 두었는데, 글쓴이가 뉴라이트 (오독 경계, 뉴레프트가 아니다)를 좌파라고 비난공격하는 분이라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기왕이면 베스트, 가령 미국 사회과학계에서 리스크에 대한 규제를 둘러싼 보다 수준있는 논쟁들을 참고하시길 권하고 싶다. 길게 쓸수는 없지만 이러한 논쟁들에서 나오는 대강의 합의에 의하면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전문가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대중의 의사보다 탁월한 것이라는 결론은 얻을 수 없다는 데에 일정한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상식을 믿자'는 캠페인과도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환경단체의 '겁주기'라고 불리는 캠페인에 의해서 유발된 것일지라도 일반인의 상식수준의 이성을 거쳐 내려진 과학적 문제에 대한 민주주의적 합의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이러한 결정에 대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편익과 문제를 제시하는 기능, 가령 현안에 따라 의약품 유통과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가져올 편익이 엄청나게 커서 시험적인 유통을 허가해 본다거나, 과학적인 증거는 부족하지만 사전예방을 위해 제품 유통을 중지해야 한다거나와 같은 리스크 평가와 처리에 대한 식견을 제시하는 임무를 전문가는 맡게 된다. 4. 유사종교적인 시민운동단체?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유사종교라고 딱지를 붙이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하지만, 환경운동 등에 패러다임 전환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서 대화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성장만을 부르짖는 분위기에서 시민단체도 경제적인 감각을 좀더 키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차원에서 경제학적 이해없이 주장을 관철하기는 사실상 곤란한 경우들을 만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가령 도룡뇽 소송 같은 것도 처음부터 도룡뇽이 죽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환경도 보전할 수 있는 제3의 노선 제시 같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천성산 소송은 새만금 소송과는 달리 그래서 더 이기기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생태주의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 모두는 경제성장이라는 유사종교에 매달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5. 유감 모기불통신의 주인장은 상식을 믿자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던데, 화학조미료가 맛나지만 몸에는 안좋은 것으로 느끼고 있고, 대안생리대가 몸에 더 좋다고 직접 느낀 많은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포스팅들에서 이따금 상식의 저항을 느꼈다. 화학물질과 천연물질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보며 나는 유전자변형물질에 관한 미국의 주장이 떠올랐다. 미국회사들이 하는 이야기는 유전자변형이 가해진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은 똑같은 농산물이므로 같은 토마토에 대해서 수입을 배제하는 것은 무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래된 비유를 들자면, 아마도 그 블로그의 주인장은 굽은 막대를 똑바로 펴기 위해서 부러 일부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의 태도를 신랄한 어구를 사용해 힐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굽은 막대를 바로 펴기 위해서는 반대방향으로 그만큼 과장된 힘을 가해줘야 막대가 제대로 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 역시 굽은 막대를 펴기 위해서 과장섞인 반대구호들을 외치고 있는지.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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