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느꼈다구

확실히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고민을 잘 못 들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인이 주변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 꼭 입바른 소리를 해서 결국 둘이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있죠. 그냥 들어주고 위로받기를 원하는데 자꾸 답을 주려고 하니까 연인 입장에서 고민을 들어줄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죠. 제 이야기라고는 안했습니다. (웃음)

인간관계나 세상살이에서도 확실히 이성적인 방식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많은 영역들이 있습니다. 논쟁을 하거나 싸움을 할 경우에 종종 내가 그런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공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잘 들어보면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받는 사람 입장에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예전엔 논의의 맥을 못 짚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곤 했는데, 가만 보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무작정 비이성적인 반응으로만 볼 게 아닌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느낄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죠. 설사 그것이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도.

"이성적인 논증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오류와 잡음 없이 진행되는 완벽한 토론은 없고, 지나친 기대는 이성적 토론 자체에 대한 환멸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주어진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세, 감정과 열정이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오히려 더 잘 충족될 수 있도록 돕는 자세, 상대가 느끼고 있는 지점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가를 파악하는 애정이 함께 가야겠습니다.

by alster | 2006/07/01 08:44 | 골드문트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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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7/01 09:43
'오독'했다며 대응하는 사람과는 다시는 말하고 싶어지지 않더라구요.
명확한 의사전달의 실패는 글쓴이와 독자 양방간의 문제일텐데, '오독'이란건 독자에게 모든걸 떠넘기는 표현이니까요.
실제로 글쓰기에서 이성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려고 한다하더라도, 글쓴이의 주관이 어느 정도 담겨 있기 마련이므로 그것에 대한 코드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예외는 존재하겠습니다만.

인터넷이 아닌 현실에서의 논쟁도 앞서 말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3자에게 기댈 권력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싸움에서 이김으로써)이 아닌 이상은, 좀 더 상대를 배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제시하고 있는 고마운 사람일테니까요.
Commented by 꼬리 at 2006/07/01 13:27
'이성적인 논증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라는 얘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문득 느끼는 거지만, 글쓰는 영역은 다른데 위의 ArborDay님과 alster님은 분위기가 참 비슷한거 같아요..젠틀하고 고우시다고 할까...남자분들에게 이런 얘기 해두 되나...^^;;
Commented by konzerte at 2006/07/01 14:06
과격하고 말보다 주먹이 빠른 저와는 다르군요. (음?)
살아온 방식이 다른 만큼 사고의 구조도 다를텐데, 상대방의 사고체계를 자신의 방식에 맞춰 강제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이성엔 필연적으로 취약점이 있기 마련인데도 그를 광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죠(칸트는 아직 건재한가 봅니다).
Commented by 생명빛 at 2006/07/01 16:34
동감입니다. 사실 감정에 의해 미리 선입견을 갖고 나서(직관이라 할 수도 있겠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들이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논리적으로 옳은 것에 확실하게 수긍할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사람이구요. 사실, 학자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경우, 어떤 식으로든 반대논리를 끌어다대는 태도가 종종 보이곤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의 많은 문제들은 답이 없고 무엇이 옳은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이승환 at 2006/07/01 20:21
남자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다보면 아예 싸우려고 만나는 것 같기도 해요 ^^
Commented by konzerte at 2006/07/01 21:16
독일어판 제목은 모르겠는데, 한국에 '토론의 기술'이란 제목으로 발간 된 쇼펜하우어의 책이 있습니다. 토론이란 게 얼마나 우습게 흘러갈 수 있는지 잘 나와있더군요. alster님, 독일어판 제목 혹시 아시나요?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01 22:37
AborDay님: "오독"이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될 것같네요.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결국은 내 마음 왜 몰라줘 이런 뜻인가요? ^^

꼬리님: 인용하신, 그리고 제가 인용한 표현은 richtig Argumentieren (바르게 토론하기, 우리나라에도 다른 이름을 번역이 되어 있던데....)에 나온 말입니다. ArborDay님은 확실히 마음이 고우신 것같더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01 22:43
konzerte님: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던가 뭐 그런 꼼수 가르치는 책 말씀 하시는겁니까? 알게 되면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저는 이성의 힘은 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랍니다.^^ 그걸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alster at 2006/07/01 22:49
생명빛님: 말씀처럼 직관과 주장의 결과에 대해 판단한 다음에 그걸 논리로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죠. 판결에도 그런 부분이 많은데, 학문적으로도 그런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답니다. 법학은 사회과학이면서 답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력과 도그마가 같이 있죠.^^

이승환님: 진짜 주먹질도 하잖아요.^^ 그럴 때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한 쪽이 좀 더 패줬으면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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